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
미국에서 스포츠 구장 이름을 팔아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여 년 전부터다. 1973년 당시 리치푸드란 식료품회사가 NFL 버팔로 빌스의 새 구장 이름 사용권을 25년간 150만 달러(15억 원)에 산 것이 시초였다. 그리고 그 후로 20년간이나 구장 이름을 팔아 큰돈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구단들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1990년만 해도 몇몇 일부 구단을 제외하곤 구장의 이름을 판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구장 이름 판매는 엄청난 유행을 타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메이저리그 야구팀과 NFL 미식축구팀의 절반 이상, NBA 농구와 NHL 아이스하키팀의 75% 이상, 그리고 심지어 대학 구장도 기업에 이름을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규모도 커져 1995년에만 해도 연간 130만 달러(13억 원)였던 구장 이름 사용권이 오늘날 연평균 200만 달러(20억 원) 대로 올라갔다. 그리고 또한 총 32억달러(3조2천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시장으로 변모했다.
기업들이나 스포츠 마케터들은 이처럼 구장 이름에 자사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막대한 홍보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엔비전 그룹의 CEO이자 회장인 제프리 크내플은 “기업들이 끊임없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혈안이 되어 있고, 또 소비자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시장 상황에서는 기업의 스포츠 구장 이름 사용이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상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며 구장 이름 사용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것이 현대 경제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런 낙관주의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을 뿐더러 구장 이름 사용에 따른 광고 및 홍보 효과도 돈을 쏟아붓는 기업들의 기대에 미친다는 입증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최근 일부 기업들은 장기계약을 맺어놓고도 재정적인 이유로 중도에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NFL 휴스턴 텍산은 에너지기업 엔론에 30년간 무려 1억달러(1천억 원)에 구장 이름 사용권을 팔았는데, 2002년 엔론이 파산하면서 이 사용 계약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또 현재 NFL 뉴잉글랜드의 CMCI필드, 볼티모어의 PSINet 스타디움, 테네시의 아델피아 스타디움, 인디애나폴리스의 유니이티드 센터, 콘세코 필드하우스 등은 장기계약을 맺은 스폰서 기업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약이 취소되거나 일방적으로 파기될 위기에 놓여 있다.
특히, 9.11 사태 이후 비행기 승객들이 대폭 감소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델타 에어라인, 아메리칸 웨스트,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도 적자 행진이 계속되자 거액을 쏟아부은 구장 이름 사용권 포기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일부 비평가들은 ‘구장이름 사용권의 저주(naming right curse)’ 라고 말하며 그 효율성과 효과에 여전히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런 구장들의 대부분이 국민의 혈세로 지어짐에도 불구하고 구장 이름을 판 수익은 고스란히 구단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유인즉, 각 도시들이 프로팀들을 유치하기 위해 이런 수익을 경쟁적으로 구단에 양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구단은 구장짓는 데 돈 한 푼 안 내고 구장 이름 사용권을 거저 얻어 연간 20억원이 넘는 거금을 공짜로 벌어들이는 것이다. 반대로 일반시민들은 자신들이 낸 혈세로 스타디움을 짓고도 아무런 혜택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효과 면에서 아무런 입증도 안 된 스포츠 구장 이름 사용권. 하지만 벌써 미국에서는 한 해 3조원대의 시장 규모로 성장해 있다. 단순한 거품일까, 아니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직 구장 이름 사용권 판매가 생소하기만 한 한국에서도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구장 이름까지 팔아먹는, 그것도 엄청난 돈을 받고 파는 미국인들의 상술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보다 한 술 더 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참조 : 구단 운영에 뛰어드는 부자들
답글 남기기